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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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3-28 13:57 조회1,128회 댓글0건본문
고통은 결국 용서의 문제입니다
시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은유와 생략이 많아 시인의 뜻을 짐작하기 쉽지 않고, 평론가의 해설을 읽어도 때론 해설이 더 어렵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의 책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가 더욱 반갑다.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시 가운데 60여 편을 고르고, 그 시가 태어나기까지 그에게 고였던 마음을 적었다. 말하자면 ‘시가 태어난 자리’를 시인이 직접 들려준 것이다.
시인은 이번 책에서 줄곧 ‘고통’에 대해 말했다. 평안해 보이는 그의 얼굴과는 달리 우리가 모르는 고통이 많았던가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고통이란 그가 겪은 사적인 고통이 아닌, 생의 근원적인 고통을 뜻하는 것 같다. 또 그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무엇이 아닌, 어쩌면 생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이날 북토크에서도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여러분은 언제 가장 고통스럽습니까? 무엇 때문에 고통스럽습니까? 가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결국은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계속 사랑만 합니까? 그렇지 않죠. 동시에 고통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 순간 죽음도 옵니다. 네, 생명과 죽음은 동시에 같이 있는 거예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사랑이 있으면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용서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앉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되는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을 담아 시를 한 편 썼다.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로 시작하는 시. 하지만 이런 의자는 없다며 시인은 ‘용서의 의자’를 쓰던 당시의 마음을 산문으로 풀어냈는데, 그 가운데 몇 줄을 직접 낭독했다. 나는 어쩌면 용서한다, 용서한다 하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마칠 것 같다. 용서한다는 게 상대방을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용서하기란 헤엄칠 줄 모르는 내가 한강을 헤엄쳐 건너라고 강요당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중략)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남을 용서하는 일이다.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다 큰 나를 다시 태아가 되어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제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낭독을 마친 시인은 청중에게 물었다. 이런 시와 산문을 썼으니 자신이 남을 용서하기에 이르렀을 것 같냐고.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용서하지 못하니 이런 시도 쓰고 산문도 쓰는 거라고. 시인도 남을 미워하고 욕도 하는 평범한 일상인이라고. 용서 이야기는 다시 고통으로 돌아갔고, 시인은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시를 골라 청중 한 명에게 낭독을 청했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 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난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 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 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시인의 이야기와 낭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청중의 손이 올라갔다. 이날 찾아온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할까. 청중과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
청중 1_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저와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도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거든요. 선생님의 어머님은 돌아가신 걸로 아는데, 가장 그리운 추억, 또 어떤 것이 후회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그 사랑을 깨달아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어머니는 계속 저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셨어요.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고 했더니 ‘요새 내가 걱정이 많다. 내가 한 달을 못 넘길 것 같은데 내가 죽고 나면 네가 어떻게 살까 그게 걱정이다’ 이러시는 겁니다. 제가 놀라서 ‘어머니, 제 나이가 일흔입니다. 일흔이나 된 아들을 왜 걱정하세요?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신 아버지가 천국에 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어머니는 천국에 가실 게 분명한데 아버지가 지옥에 계시면 못 만나잖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어머니를 안아드렸어요. 이제야 어머니 말씀이 이해됩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떤 잘못을 해도 항상 용서해주셨어요. 어머니의 사랑, 그 절대적 사랑 속엔 용서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또 어머니는 일찌감치 김소월류의 시를 쓰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다’ 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저도 슬플 때 시를 썼습니다. 그러면 시는 언제 읽을까요? 역시 슬플 때일 겁니다.”
청중 2_ 계속 용서를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선생님처럼 온화한 분에게도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을까 의문이 생겼어요. 용서하고 싶지만 잘 안될 때 선생님은 어떻게 하나요?
“누구나 가슴속에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을 거예요. 혜민 스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독약을 먹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또 ‘용서는 선택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일들은 다 과거에 일어난 것이에요.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당장 해결하려 하지 않고 시간에 맡기는 겁니다. 시간에는 놀라운 치유의 힘이 있어요. 제게도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5년, 10년이 지나자 증오와 분노의 두께가 얇아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죽을 때 수의 대신 양복을 입겠다고 말해뒀습니다. 양복엔 주머니가 많으니까 그 주머니 속에 용서하지 못한 것,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넣어 가려 합니다. 또 저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용서 못함도 제가 가져가려 해요. 그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죠.” 고통이나 용서 같은 이야기가 조금 무거웠을까. 이번엔 실용적인 질문, 아니 시인에게 의당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 나왔다.
청중 3_ 일상에서 관찰한 것들을 어떻게 메모하고 시로 승화하는지 궁금합니다.
“시는 우리 삶 속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시는 하늘의 별 속에 있는 것도, 이슬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삶 속에 있어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메모를 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썼다가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요. 가령 늘 다니는 횡단보도가 어느 날 딱 시 제목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제 가슴속에서 횡단보도의 의미가 특별해지는 거죠. 그러면 ‘횡단보도’라고 즉시 메모하고 시의 한 행을 써요. 그다음엔 평소 메모한 것들을 파일로 정리합니다. 현재 파일이 700개쯤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를 쓰기 시작하는데 한꺼번에 써요. 1000개의 메모를 했다고 해서 1000편의 시가 나올까요? 메모는 메모일 뿐, 메모를 시로 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보통 6개월 정도에 몰아서 쓰죠. 그러면 100여 편의 시를 쓰게 되고 시집으로 묶습니다. 그런데 시를 쓸 때 굉장히 힘들어요. 시인이 쫙쫙 시를 써내는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고쳐요. 시를 쓴다는 건 끊임없이 고쳐 쓰는 겁니다. 고쳐 쓴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죠. ‘시를 쓴다’는 말은 ‘시를 고쳐 쓴다’라고 해야 맞다고 생긱합니다. 그러니 저는 시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를 고쳐 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청중 4_ 선생님도 손주를 보셨을 것 같은데, 예쁜 손자나 손녀와 함께할 때 느끼는 감정도 시로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인들이 나이가 들면 동시를 쓰고 싶어집니다. 저는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된 적이 있습니다. 네, 저는 동시인(童詩人)입니다. 동심을 잃으면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그 속에 시가 가득 들어 있어요. 여러분 자녀들이 초등학교 3학년 이전까지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면 훌륭한 시가 됩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시예요. 저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덕에 《참새》라는 동시집을 냈고 두 번째, 세 번째 동시집 원고도 완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이들을 위한 시를 계속 써온 셈이지요.”
청중 5_ 저는 20대 아들을 둔 엄마인데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아픕니다.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건네주시겠어요?
“‘견딤이 쓰임을 낳는다’라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어요. 견딤의 가치는 그만큼 소중한 겁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입니다. 개나 돼지 같은 동물로 태어났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내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으면 좋겠어요. 소설가 김용성 씨가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 저도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어요. ‘천사도 자살하는 이의 손을 놓칠 때가 있다’. 20대에게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잖아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깨달아라. 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견딤이 쓰임을 낳는다.”
청중 6_ 선생님은 40대 때 제일 큰 고민이 무엇이었고, 그 고민을 어떻게 풀었나요.
“우리는 대개 30대까지는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회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결혼한 후엔 가정을 책임져야 하죠. 그렇게 바쁘게 살다 마흔이 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멈춰야 하나, 갈등이 점점 커집니다. 저는 40대 초반에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렸어요. 직장을 그만둔 겁니다. 잡지 기자 생활을 8~9년 했는데 더 이상 하기 싫었습니다. 아침에 햇살이 책상 위에 비치는 걸 보고 있으면 시를 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잡지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마흔이 되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몇몇 준비를 한 끝에 마흔한 살에 사표를 냈는데, 어떻게 됐을까요? 고생을 실컷 했습니다. 대가가 참혹했어요. 가장으로서 책임을 못다 했으니까요. 그때 만용이 어떤 건지 알았습니다. 마흔 넘어 뚜렷한 목적 없이 직장을 그만두려는 사람은 말리고 싶어요. 40대가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청중 7_ 선생님의 시는 교과서에 여러 편 실렸잖아요. 학생들은 시를 시험 공부하듯 배우고 외우는데 이렇게 익혀도 괜찮은 걸까요? 시를 시답게 공부하는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국어 영역에 시가 담기고 수능엔 반드시 시에 관한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러니 중·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시를 공부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 사회인이 돼서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가서 시를 읽을 때, 그때는 각자 시를 이해하고 향유하면 됩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시인이 시를 무슨 뜻으로, 어떻게 썼는가를 생각하며 읽으면 읽기 힘듭니다. 시는 침묵으로 이뤄지는 그 무엇입니다. 말 없는 말이 시예요. 그래서 시는 내 생각대로 내 느낌대로 그냥 이해하는 거예요. 내가 읽고 좋으면 좋은 시고요. 저도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많이 읽습니다. 제 마음대로 읽어요. 그 시인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 안 합니다.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서 내 가슴을 흔드는 시가 좋은 시예요.”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게도 시가 한 발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은 북토크 말미에 의미 있는 소식을 들려줬다. 대구시 수성구에 ‘정호승 시인 문학관’이 들어섰고, 시인의 고향, 하동군 섬진강 강가엔 ‘정호승 시인길’이 생겼다고.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 인간에겐 여전히 가슴이 있고, 가슴을 적시는 건 시인의 시구절이다. 어느새 봄이니 대구에도, 하동에도 가보고 싶다. 봄볕 좋은 어느 날 시인의 동네를 걸어도 좋겠다.(톱클레스발췌)
시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은유와 생략이 많아 시인의 뜻을 짐작하기 쉽지 않고, 평론가의 해설을 읽어도 때론 해설이 더 어렵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의 책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가 더욱 반갑다.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시 가운데 60여 편을 고르고, 그 시가 태어나기까지 그에게 고였던 마음을 적었다. 말하자면 ‘시가 태어난 자리’를 시인이 직접 들려준 것이다.
시인은 이번 책에서 줄곧 ‘고통’에 대해 말했다. 평안해 보이는 그의 얼굴과는 달리 우리가 모르는 고통이 많았던가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고통이란 그가 겪은 사적인 고통이 아닌, 생의 근원적인 고통을 뜻하는 것 같다. 또 그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무엇이 아닌, 어쩌면 생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이날 북토크에서도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여러분은 언제 가장 고통스럽습니까? 무엇 때문에 고통스럽습니까? 가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결국은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계속 사랑만 합니까? 그렇지 않죠. 동시에 고통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 순간 죽음도 옵니다. 네, 생명과 죽음은 동시에 같이 있는 거예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사랑이 있으면 고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용서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앉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되는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을 담아 시를 한 편 썼다.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로 시작하는 시. 하지만 이런 의자는 없다며 시인은 ‘용서의 의자’를 쓰던 당시의 마음을 산문으로 풀어냈는데, 그 가운데 몇 줄을 직접 낭독했다. 나는 어쩌면 용서한다, 용서한다 하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마칠 것 같다. 용서한다는 게 상대방을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용서하기란 헤엄칠 줄 모르는 내가 한강을 헤엄쳐 건너라고 강요당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중략)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남을 용서하는 일이다.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다 큰 나를 다시 태아가 되어 어머니 배 속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제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낭독을 마친 시인은 청중에게 물었다. 이런 시와 산문을 썼으니 자신이 남을 용서하기에 이르렀을 것 같냐고.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용서하지 못하니 이런 시도 쓰고 산문도 쓰는 거라고. 시인도 남을 미워하고 욕도 하는 평범한 일상인이라고. 용서 이야기는 다시 고통으로 돌아갔고, 시인은 고통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 뒤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시를 골라 청중 한 명에게 낭독을 청했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 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난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 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 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시인의 이야기와 낭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청중의 손이 올라갔다. 이날 찾아온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할까. 청중과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
청중 1_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저와 코드가 맞는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도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거든요. 선생님의 어머님은 돌아가신 걸로 아는데, 가장 그리운 추억, 또 어떤 것이 후회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그 사랑을 깨달아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어머니는 계속 저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셨어요.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고 했더니 ‘요새 내가 걱정이 많다. 내가 한 달을 못 넘길 것 같은데 내가 죽고 나면 네가 어떻게 살까 그게 걱정이다’ 이러시는 겁니다. 제가 놀라서 ‘어머니, 제 나이가 일흔입니다. 일흔이나 된 아들을 왜 걱정하세요?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신 아버지가 천국에 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어머니는 천국에 가실 게 분명한데 아버지가 지옥에 계시면 못 만나잖아요’ 이렇게 말하면서 어머니를 안아드렸어요. 이제야 어머니 말씀이 이해됩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떤 잘못을 해도 항상 용서해주셨어요. 어머니의 사랑, 그 절대적 사랑 속엔 용서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또 어머니는 일찌감치 김소월류의 시를 쓰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얼마 전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다’ 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저도 슬플 때 시를 썼습니다. 그러면 시는 언제 읽을까요? 역시 슬플 때일 겁니다.”
청중 2_ 계속 용서를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선생님처럼 온화한 분에게도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을까 의문이 생겼어요. 용서하고 싶지만 잘 안될 때 선생님은 어떻게 하나요?
“누구나 가슴속에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쯤 있을 거예요. 혜민 스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독약을 먹고 남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또 ‘용서는 선택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일들은 다 과거에 일어난 것이에요.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당장 해결하려 하지 않고 시간에 맡기는 겁니다. 시간에는 놀라운 치유의 힘이 있어요. 제게도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5년, 10년이 지나자 증오와 분노의 두께가 얇아지는 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죽을 때 수의 대신 양복을 입겠다고 말해뒀습니다. 양복엔 주머니가 많으니까 그 주머니 속에 용서하지 못한 것,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넣어 가려 합니다. 또 저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용서 못함도 제가 가져가려 해요. 그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죠.” 고통이나 용서 같은 이야기가 조금 무거웠을까. 이번엔 실용적인 질문, 아니 시인에게 의당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 나왔다.
청중 3_ 일상에서 관찰한 것들을 어떻게 메모하고 시로 승화하는지 궁금합니다.
“시는 우리 삶 속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시는 하늘의 별 속에 있는 것도, 이슬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삶 속에 있어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메모를 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썼다가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요. 가령 늘 다니는 횡단보도가 어느 날 딱 시 제목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제 가슴속에서 횡단보도의 의미가 특별해지는 거죠. 그러면 ‘횡단보도’라고 즉시 메모하고 시의 한 행을 써요. 그다음엔 평소 메모한 것들을 파일로 정리합니다. 현재 파일이 700개쯤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를 쓰기 시작하는데 한꺼번에 써요. 1000개의 메모를 했다고 해서 1000편의 시가 나올까요? 메모는 메모일 뿐, 메모를 시로 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보통 6개월 정도에 몰아서 쓰죠. 그러면 100여 편의 시를 쓰게 되고 시집으로 묶습니다. 그런데 시를 쓸 때 굉장히 힘들어요. 시인이 쫙쫙 시를 써내는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고쳐요. 시를 쓴다는 건 끊임없이 고쳐 쓰는 겁니다. 고쳐 쓴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죠. ‘시를 쓴다’는 말은 ‘시를 고쳐 쓴다’라고 해야 맞다고 생긱합니다. 그러니 저는 시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를 고쳐 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청중 4_ 선생님도 손주를 보셨을 것 같은데, 예쁜 손자나 손녀와 함께할 때 느끼는 감정도 시로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인들이 나이가 들면 동시를 쓰고 싶어집니다. 저는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된 적이 있습니다. 네, 저는 동시인(童詩人)입니다. 동심을 잃으면 시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그 속에 시가 가득 들어 있어요. 여러분 자녀들이 초등학교 3학년 이전까지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면 훌륭한 시가 됩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시예요. 저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덕에 《참새》라는 동시집을 냈고 두 번째, 세 번째 동시집 원고도 완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아이들을 위한 시를 계속 써온 셈이지요.”
청중 5_ 저는 20대 아들을 둔 엄마인데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아픕니다.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건네주시겠어요?
“‘견딤이 쓰임을 낳는다’라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어요. 견딤의 가치는 그만큼 소중한 겁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입니다. 개나 돼지 같은 동물로 태어났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내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으면 좋겠어요. 소설가 김용성 씨가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 저도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어요. ‘천사도 자살하는 이의 손을 놓칠 때가 있다’. 20대에게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잖아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깨달아라. 자살의 유혹에 침을 뱉어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견딤이 쓰임을 낳는다.”
청중 6_ 선생님은 40대 때 제일 큰 고민이 무엇이었고, 그 고민을 어떻게 풀었나요.
“우리는 대개 30대까지는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회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결혼한 후엔 가정을 책임져야 하죠. 그렇게 바쁘게 살다 마흔이 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멈춰야 하나, 갈등이 점점 커집니다. 저는 40대 초반에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렸어요. 직장을 그만둔 겁니다. 잡지 기자 생활을 8~9년 했는데 더 이상 하기 싫었습니다. 아침에 햇살이 책상 위에 비치는 걸 보고 있으면 시를 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잡지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마흔이 되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몇몇 준비를 한 끝에 마흔한 살에 사표를 냈는데, 어떻게 됐을까요? 고생을 실컷 했습니다. 대가가 참혹했어요. 가장으로서 책임을 못다 했으니까요. 그때 만용이 어떤 건지 알았습니다. 마흔 넘어 뚜렷한 목적 없이 직장을 그만두려는 사람은 말리고 싶어요. 40대가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청중 7_ 선생님의 시는 교과서에 여러 편 실렸잖아요. 학생들은 시를 시험 공부하듯 배우고 외우는데 이렇게 익혀도 괜찮은 걸까요? 시를 시답게 공부하는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국어 영역에 시가 담기고 수능엔 반드시 시에 관한 문제가 나오잖아요. 그러니 중·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시를 공부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 사회인이 돼서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가서 시를 읽을 때, 그때는 각자 시를 이해하고 향유하면 됩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시인이 시를 무슨 뜻으로, 어떻게 썼는가를 생각하며 읽으면 읽기 힘듭니다. 시는 침묵으로 이뤄지는 그 무엇입니다. 말 없는 말이 시예요. 그래서 시는 내 생각대로 내 느낌대로 그냥 이해하는 거예요. 내가 읽고 좋으면 좋은 시고요. 저도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많이 읽습니다. 제 마음대로 읽어요. 그 시인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 안 합니다.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서 내 가슴을 흔드는 시가 좋은 시예요.”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게도 시가 한 발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은 북토크 말미에 의미 있는 소식을 들려줬다. 대구시 수성구에 ‘정호승 시인 문학관’이 들어섰고, 시인의 고향, 하동군 섬진강 강가엔 ‘정호승 시인길’이 생겼다고.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 인간에겐 여전히 가슴이 있고, 가슴을 적시는 건 시인의 시구절이다. 어느새 봄이니 대구에도, 하동에도 가보고 싶다. 봄볕 좋은 어느 날 시인의 동네를 걸어도 좋겠다.(톱클레스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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