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어보니 달라진 것들- 말마음연구소 소장 김윤나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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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30 11:10 조회1회 댓글0건본문
나를 알아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저는 ‘나는 ○○이다’ 문장을 쭉 만들어보라고 해요.어떤 사람은 ‘나는 A의 남편이다’ ‘나는 B 회사에 다닌다’처럼 프로필을 채워요. 물론 이것도 나예요. 하지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나만 아는 다양한 나’예요. 나를 최대한 다양한 범위에서 정의해 보는 겁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돌아볼 때가 좋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 즐겁다’ ‘나는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매일 배우고 발전하는 느낌이 좋다’처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요.
*30대는 성장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예요. 승진·이직을 위해서가 아니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 따지게 되는.
지금 시대의 30대는 성장 욕구가 굉장히 커요. 조급함도 있는 것 같아요. 40대, 50대, 60대가 돼도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지는데 지금 성장의 피치(능률)를 올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드러나요. 마음이 급하면 내 줄이 아닌 곳에 자꾸 서게 돼요. ‘쟤가 영어학원 다니네’, 싶어 학원에 등록했다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죠.
*내 줄이 아닌 건 어떻게 알죠?
아까 얘기한 가치를 보는 거죠. 내 삶의 방향과 일치하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에너지가 되는 욕구를 채우는지도 확인해 보세요. 새벽에 영어학원 가서 뭔가 배우면 가슴 설레고 채워지는 느낌이 있어야 해요. ‘그래, 이 맛이지’ 하면서 에너지가 꽉 들어차는 기분이 들죠. 그런데 꾸역꾸역 억지로 하는 것 같으면 내 욕구가 아닌 거예요. 그 감각은 나만 알아요. 하는 일이 나의 강점인지도 중요해요. 비교 강점이 아니라 죽어라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성과가 괜찮은 게 있잖아요. 그게 강점이에요. 가치, 에너지(욕구), 강점 세 감각을 갖고 시도해야 엄한 데 줄 서지 않아요.
*김윤나 소장의 30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흔들리던 시기가 왜 없었겠어요. 우울함, 불안함, 치열함. 저는 이 세 가지 감정을 반복 사용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연애에 꽝일까 싶고, 강연 일을 몇 년 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위치에 가지 못했어요. 사랑도, 일도 잘되지 않았죠. 끝없이 우울해지는 경험을 하다가 선택했어요. 더 치열하게 살아보자고. 30대에 결혼하고 출산에 임박해서도 강연을 했고, 매년 책을 쓰며 나를 갈아 넣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나를 잃게 돼요. 그건 건강일 수도, 관계일 수도, 나다움일 수도 있는데 저는 다 잃어봤어요. 또 불안이 밀려와요. 원하는 지점을 향한 과정도 불안하지만 성과가 생겨도 불안하거든요. 책 한 권이 나오면, 연봉이 오르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 기대하잖아요. 근데 원하는 곳에 닿자 또 다른 불안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평온한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목표마다 불안함은 늘 있는 거죠.
*40대인 지금은 좀 편안해졌나요?
이제 어느 정도 안정감도 있고 저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생겼고 책도 많은 사랑을 받지만 여전히 그래요. 그때와 다른 점은 이제 내가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됐다는 거죠.
*베스트셀러 《말 그릇》 작가로서 ‘말 그릇’이란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30대에게 필요한 말 그릇이 있다면.30대에는 인간관계가 넓어지잖아요. 그만큼 상처도 많고요. 말 그릇은 내 안에 그릇이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는 비유예요. 그 그릇 안에서 말이 만들어져요. 입은 말을 발화할 뿐, 말을 만드는 건 마음이거든요. 마음 공간이 넉넉하면, 즉 그릇이 크면 여력이 생겨요. 마음의 여력이라는 건 누군가 따끔한 말을 해도 적당히 걸러 듣고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예요. 그러면 자극에 덜 불편하고 영향력 있게 말하면서 좀 더 유연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죠. 반면 말 그릇이 작으면 불편한 자극에 반사적으로 말이 치고 나가요. 관계도 힘들어지고 내가 괜찮아 보이지도 않겠죠.
*누군가를 보며 ‘멋있게 나이 들었구나’ 생각이 드는 유형이 있나요?
기업 강연을 가면 다양한 세대를 만나요. 저보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젊어서 그 회사에 뭘 알고 들어간 건 아니지만, 그 회사에 가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고. 저는 그분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알고 이동했다고 봐요. 자기 이해와 원하는 가치, 욕구를 알고 있어 결과적으로 나다운 선택을 한 거죠. “난 운이 참 좋았어”라고도 말하는데 운만은 아닐 거예요. 중심에 나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노력들이 연결된 거죠. 우리 삶은 연결되게 돼있어요. 또 “감사하다”는 표현을 많이 해요. “예전에 진상을 만났지만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독기 품고 할 수 있었다”며 모든 삶의 장면을 감사함으로 풀어내죠. 감사함을 말하지 못하는 어른도 많거든요. 통제감을 말하는 어른도 멋있어요.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가 있잖아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묻는 거예요. 이런 어른을 만나면 저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20~30세대에서도 발견하는 멋짐이 있을까요?
진짜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요. 무언가에 많이 부딪히는 시기잖아요. 사람, 돈, 일. 어떤 친구들은 그럴 때 “나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하고 다른 질문을 하더라고요. 세상과 주변을 탓하기 쉬운 시기인데 그러지 않아요. 내가 변해야 삶이 변한다는 걸 일찌감치 아는 거예요. 또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친구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어떤 경험에서 무엇을 배운 것인지,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 앞으로가 기대돼요.
*몇몇 책을 통해 가정사, 연애사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냈는데요.
나를 옭아매는 어려움을 밝히는 자체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읽혔어요.어려서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을 겪었어요. 새엄마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어요. 크고 나서 보니 저에게 두 가지 결핍이 있더라고요. 하나는 안정감, 다른 하나는 존재감. ‘내가 태어난 게 잘된 일인가’ ‘나는 환영받는 사람인가’ 싶었던 거죠.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저는 엄마랑 살고 싶었는데 엄마는 저를 키우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어요. 제가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친엄마를 한 번 만났어요. 생각해 보면 안정감과 존재감의 결핍이 제 인생을 도와주기도 했어요. ‘내가 이걸 잘하면 존재감이 생기겠지’ ‘이렇게 하면 부모한테 존재감이 생기겠지’ 하는 동력이 된 거예요.
*결핍을 인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릴 적 상처는 해결되지 않아요. 그냥 동행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해요. 0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과거에는 100이었다면 지금은 10 정도 돼서 데리고 살 만한 거예요. 또 남편을 잘 선택해 결혼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치유가 돼 안정감이 생겼어요. 결혼한다고 다 치유되진 않아요. 30대 초반에 했던 자기 이해 공부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정리가 되자 그런 가치를 같이 볼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해 가능했어요. 그랬기에 결혼과 육아가 저의 안정감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존재감은 아직도 가끔 흔들려요. 아까 말한 불안감처럼 어떤 목표를 달성하면 괜찮다가도 또 금방 나락으로 떨어지거든요.
*그럴 때는 어떤 질문을 던지나요?
방송에 출연해서 했던 작은 실수가 마음에 안 든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 괜찮다는데 저는 허용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물었어요. ‘이제 공존할 만하다는 거, 진짜야?’ ‘방송에서 잘하면 난 존재감이 있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별로인 거야?’ ‘여태 쌓아온 걸 봐. 이 실수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거야?’ 물론 대답은 ‘아니’였죠. 질문하고 또 질문하면서 예전에는 일주일 동안 힘들어하던 일을 이제는 한두 시간이면 본래의 나로 돌이킬 수 있게 됐어요. 나와 대화를 잘해야 잘 회복할 수 있는 거죠.(톱클래스발췌)
*30대는 성장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큰 시기예요. 승진·이직을 위해서가 아니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 따지게 되는.
지금 시대의 30대는 성장 욕구가 굉장히 커요. 조급함도 있는 것 같아요. 40대, 50대, 60대가 돼도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지는데 지금 성장의 피치(능률)를 올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드러나요. 마음이 급하면 내 줄이 아닌 곳에 자꾸 서게 돼요. ‘쟤가 영어학원 다니네’, 싶어 학원에 등록했다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거죠.
*내 줄이 아닌 건 어떻게 알죠?
아까 얘기한 가치를 보는 거죠. 내 삶의 방향과 일치하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에너지가 되는 욕구를 채우는지도 확인해 보세요. 새벽에 영어학원 가서 뭔가 배우면 가슴 설레고 채워지는 느낌이 있어야 해요. ‘그래, 이 맛이지’ 하면서 에너지가 꽉 들어차는 기분이 들죠. 그런데 꾸역꾸역 억지로 하는 것 같으면 내 욕구가 아닌 거예요. 그 감각은 나만 알아요. 하는 일이 나의 강점인지도 중요해요. 비교 강점이 아니라 죽어라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성과가 괜찮은 게 있잖아요. 그게 강점이에요. 가치, 에너지(욕구), 강점 세 감각을 갖고 시도해야 엄한 데 줄 서지 않아요.
*김윤나 소장의 30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흔들리던 시기가 왜 없었겠어요. 우울함, 불안함, 치열함. 저는 이 세 가지 감정을 반복 사용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연애에 꽝일까 싶고, 강연 일을 몇 년 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위치에 가지 못했어요. 사랑도, 일도 잘되지 않았죠. 끝없이 우울해지는 경험을 하다가 선택했어요. 더 치열하게 살아보자고. 30대에 결혼하고 출산에 임박해서도 강연을 했고, 매년 책을 쓰며 나를 갈아 넣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나를 잃게 돼요. 그건 건강일 수도, 관계일 수도, 나다움일 수도 있는데 저는 다 잃어봤어요. 또 불안이 밀려와요. 원하는 지점을 향한 과정도 불안하지만 성과가 생겨도 불안하거든요. 책 한 권이 나오면, 연봉이 오르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 기대하잖아요. 근데 원하는 곳에 닿자 또 다른 불안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평온한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목표마다 불안함은 늘 있는 거죠.
*40대인 지금은 좀 편안해졌나요?
이제 어느 정도 안정감도 있고 저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생겼고 책도 많은 사랑을 받지만 여전히 그래요. 그때와 다른 점은 이제 내가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됐다는 거죠.
*베스트셀러 《말 그릇》 작가로서 ‘말 그릇’이란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30대에게 필요한 말 그릇이 있다면.30대에는 인간관계가 넓어지잖아요. 그만큼 상처도 많고요. 말 그릇은 내 안에 그릇이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는 비유예요. 그 그릇 안에서 말이 만들어져요. 입은 말을 발화할 뿐, 말을 만드는 건 마음이거든요. 마음 공간이 넉넉하면, 즉 그릇이 크면 여력이 생겨요. 마음의 여력이라는 건 누군가 따끔한 말을 해도 적당히 걸러 듣고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예요. 그러면 자극에 덜 불편하고 영향력 있게 말하면서 좀 더 유연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죠. 반면 말 그릇이 작으면 불편한 자극에 반사적으로 말이 치고 나가요. 관계도 힘들어지고 내가 괜찮아 보이지도 않겠죠.
*누군가를 보며 ‘멋있게 나이 들었구나’ 생각이 드는 유형이 있나요?
기업 강연을 가면 다양한 세대를 만나요. 저보다 연배가 있는 분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젊어서 그 회사에 뭘 알고 들어간 건 아니지만, 그 회사에 가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고. 저는 그분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알고 이동했다고 봐요. 자기 이해와 원하는 가치, 욕구를 알고 있어 결과적으로 나다운 선택을 한 거죠. “난 운이 참 좋았어”라고도 말하는데 운만은 아닐 거예요. 중심에 나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노력들이 연결된 거죠. 우리 삶은 연결되게 돼있어요. 또 “감사하다”는 표현을 많이 해요. “예전에 진상을 만났지만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독기 품고 할 수 있었다”며 모든 삶의 장면을 감사함으로 풀어내죠. 감사함을 말하지 못하는 어른도 많거든요. 통제감을 말하는 어른도 멋있어요.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가 있잖아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묻는 거예요. 이런 어른을 만나면 저도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20~30세대에서도 발견하는 멋짐이 있을까요?
진짜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요. 무언가에 많이 부딪히는 시기잖아요. 사람, 돈, 일. 어떤 친구들은 그럴 때 “나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하고 다른 질문을 하더라고요. 세상과 주변을 탓하기 쉬운 시기인데 그러지 않아요. 내가 변해야 삶이 변한다는 걸 일찌감치 아는 거예요. 또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친구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어떤 경험에서 무엇을 배운 것인지, 생각하는 친구들을 보면 앞으로가 기대돼요.
*몇몇 책을 통해 가정사, 연애사의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냈는데요.
나를 옭아매는 어려움을 밝히는 자체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읽혔어요.어려서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을 겪었어요. 새엄마도 몇 번이나 바뀌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어요. 크고 나서 보니 저에게 두 가지 결핍이 있더라고요. 하나는 안정감, 다른 하나는 존재감. ‘내가 태어난 게 잘된 일인가’ ‘나는 환영받는 사람인가’ 싶었던 거죠.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저는 엄마랑 살고 싶었는데 엄마는 저를 키우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어요. 제가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친엄마를 한 번 만났어요. 생각해 보면 안정감과 존재감의 결핍이 제 인생을 도와주기도 했어요. ‘내가 이걸 잘하면 존재감이 생기겠지’ ‘이렇게 하면 부모한테 존재감이 생기겠지’ 하는 동력이 된 거예요.
*결핍을 인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릴 적 상처는 해결되지 않아요. 그냥 동행할 수 있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해요. 0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과거에는 100이었다면 지금은 10 정도 돼서 데리고 살 만한 거예요. 또 남편을 잘 선택해 결혼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치유가 돼 안정감이 생겼어요. 결혼한다고 다 치유되진 않아요. 30대 초반에 했던 자기 이해 공부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정리가 되자 그런 가치를 같이 볼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해 가능했어요. 그랬기에 결혼과 육아가 저의 안정감을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존재감은 아직도 가끔 흔들려요. 아까 말한 불안감처럼 어떤 목표를 달성하면 괜찮다가도 또 금방 나락으로 떨어지거든요.
*그럴 때는 어떤 질문을 던지나요?
방송에 출연해서 했던 작은 실수가 마음에 안 든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다 괜찮다는데 저는 허용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물었어요. ‘이제 공존할 만하다는 거, 진짜야?’ ‘방송에서 잘하면 난 존재감이 있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별로인 거야?’ ‘여태 쌓아온 걸 봐. 이 실수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거야?’ 물론 대답은 ‘아니’였죠. 질문하고 또 질문하면서 예전에는 일주일 동안 힘들어하던 일을 이제는 한두 시간이면 본래의 나로 돌이킬 수 있게 됐어요. 나와 대화를 잘해야 잘 회복할 수 있는 거죠.(톱클래스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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