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락되지도 항복하지도 않는 배우 탕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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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6-27 10:20 조회421회 댓글0건본문
어린 탕웨이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기본적으로 흙을 좋아하고 땅을 딛고 선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딘가 묻혀 있을 미지의 세계에 먼지를 털어 지금 이곳과 연결해보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그가 배우가 된 건 우연이었다. 예술가 부모 아래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그의 1지망은 도예과였다. 그가 입학하던 해 도예과에서는 신입생을 뽑지 않았고 차선으로 선택한 게 연기과다. 이후 그는 북경의 중앙희극학교에 진학했는데, 이곳은 들어가기 어렵기로 유명했다. 대륙의 인재들이 모인다는 이 학교에 탕웨이는 3수 끝에 연출과에 합격했다. 그렇다고 감독이 되려는 건 아니었다. 배우가 되겠다거나 연출을 하겠다는 거창한 목표 없이 그저 매일이 즐거웠던 사람,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던 그에게 교수가 청춘드라마를 추천했다. 그렇게 드라마에 출연한 게 데뷔라면 데뷔였다. 이후 〈색, 계〉 찾아왔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이안 감독의 신작에 1만 명의 배우가 오디션을 봤다. 유명한 이들도 숱했다. 오디션장이 멀지 않아 친구 따라 참가했던 탕웨이는 1만 대 1의 경쟁을 뚫고 ‘왕치아즈’가 됐다. 아마 ‘이 1만 명을 반드시 이기리라’는 패기나 ‘이 기회에 유명한 배우가 되리라’는 욕망이 앞섰다면 그는 발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글거림으로는 1만을 이길 수 없다. 탕웨이의 욕망은 그 너머에 있었다. 운명이 나를 어디로 이끌더라도 순순히 굴복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결기, 이끌려 간 곳이 어디든 그 땅을 내 힘으로 개간하리라는 다짐 같은 것. “탕웨이가 걸어 들어오는 순간, 1940년의 상하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당시 각본가였던 제임스 서머스의 회고였다. 〈색, 계〉 개봉 후 전 세계는 대가의 귀환을 환영하며 진흙 같은 시대에 그가 발탁한 진주에 환호했다. 하지만 중국은 영화의 내용을 문제 삼아 수년간 탕웨이의 배우 활동을 금지했다. 탕웨이는 홍콩으로 이주해 시민권을 얻고서야 다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운명은 그를 불모지로 이끌었지만 그는 항복하지 않았다. 할리우드와 아시아를 오가며 필모를 쌓았고 그중에는 한국의 김태용 감독과 만든 〈만추〉도 있었다. 2011년 무르익은 가을을 그린 영화로 만난 두 사람은 3년 뒤인 2014년 부부가 됐고, 10년이 흘러 2024년 다시 한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었다. 사람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 영화 〈원더랜드〉다. 인터뷰에는 그의 오랜 벗인 통역사가 함께했다. 탕웨이는 하나의 질문에 여러 개의 대답을 내놓았다. 통역사가 자신의 말을 통역하는 동안 질문을 곱씹어 좀 더 적확한 답을 찾아냈다. 적어도 탕웨이와 인터뷰에서 언어가 장벽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 직업의 특성상 집을 떠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와 일상을 나누기 위해 영상통화를 자주 하죠. 음성통화보다 영상통화가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요. 그러다 보니 ‘이 영상이 실제가 아니라면?’이라는 질문에 이른 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이 통화는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요.” 탕웨이의 답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원더랜드 서비스’(죽은 사람 혹은 의식이 없는 사람을 AI로 재현해 산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가상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완성한 지금은 이 서비스가 누군가에게는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을 잃은 고통을 서서히 잊게 해주는 진통제요. 고통이 나아진다면 이후엔 이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겠죠.” 당신이 연기한 바이리는 아이를 두고 떠난 엄마입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빈자리를 AI가 채워주기를 바라죠. “바이리와 저의 상황은 아주 비슷해요. 아마 우리 대화가 영화에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겠죠. 저도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고 외동딸이고, 제 딸도 외동딸이죠. AI 바이리가 아이에게 하는 ‘잘 자고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라는 말은 실제로 제가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해요.” 〈원더랜드〉 속 AI들의 공통점은 울지 않고, 화내지 않는다는 거예요.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죠. 그런 AI를 연기하는 탕웨이에게도 위화감이 없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사실 AI 바이리와 저는 굉장히 닮은 점이 많아요. 저도 잘 울지 않고 잘 화내지 않거든요. AI를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관객에게 그 세계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어려웠죠. 또 하나 비밀이 있어요. 바이리가 죽은 뒤 고고학자 AI로 다시 태어나잖아요? 고고학자는 제 어릴 적 꿈이었어요. 감독님이 이렇게라도 제 꿈을 이루게 해준 것 같아요.”
*고고학자가 꿈이었군요.
“흙을 만지는 걸 좋아했거든요. 잊힌 세계를 복구하는 것에도 흥미가 있었고요. 한때는 도예가가 되는 게 꿈이기도 했어요.” 월극 배우였던 어머니를 보며 자라 배우를 지망한 건 아니었고요. “배우가 꿈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제 삶을 돌아보면 인연을 따라 흘러온 경이로운 반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인연이 저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이끌었고요.”
*감독과의 인연도 그렇습니다.
“감독님은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호기심이 많아요. 여섯 살 아이의 호기심과 60세 어른의 지혜가 공존해요. 뭔가 질문이 생기면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고 답을 얻을 때까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대화하고 연구해요. 그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따스함이 있죠. 연구하는 과정은 과학자 같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주 예술가죠.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 세계도 확장됐습니다.” 김태용 감독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 탕웨이를 존경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집중하기 위한 노력을 보면서 〈만추〉를 찍을 때와 또 다른 성장을 느꼈다고요. “제가 성장했다면 작품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작품을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의 현장이 저를 성장하게 해줬을 거예요. 어느 나라의 작품이냐보다 어느 감독의 작품인가가 제게는 더 중요해요. 저는 운이 좋게도 좋은 감독님과 계속 작업을 해올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색,계〉를 만든 이안 감독님은 마치 병풍 같았어요. 펼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장면이 생겨났죠.”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헤어질 결심〉은 어떤 현장이었나요?
“감독님은 현장에서 늘 온화하게 웃고 있었어요. 어떤 이야기든 다 수용해줬고요. 서래의 대사는 모두 감독님 음성으로 녹음해서 연습했어요. 서래의 감정과 뉘앙스를 가장 잘 알 테니까요.” 〈헤어질 결심〉 당시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를 “한국 영화에 굴러 들어온 복”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오직 탕웨이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송서래의 국적을 중국인으로 설정했다”고 했다. 한국어로 만든 한국 영화에서 한국어를 잘 못하는 타자 입장에 선 서래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한 번도 불리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누구의 말보다 밀도가 있다. 극 중 해준(박해일 분)은 서래를 가리켜 “긴장하지 않으면서 꼿꼿한 사람”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은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에게도 딱 맞는 설명이다.
*당신은 영화 속에서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연기합니다. 각 언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어릴 적부터 언어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언어를 배우는 건 그 세계의 문화와 생활과 사람을 배우는 일이니까요. 한국어를 더 배우지 못한 걸 아쉽게 생각합니다. 김태용 감독님과 결혼하면서 하루에 한 마디라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우리 대화는 처음부터 영어로 이뤄졌고, (남편은 호주에서 공부해서 영어를 아주 잘합니다) 한번 설정된 부부의 언어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감독이 남편인 경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까요?
“(오랜 시간 고민하며) 현장에서 그는 남편이 아니에요. 오직 감독이죠. 남편으로서는 아주 따뜻한 사람입니다. 저는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펼칠 때 태어나서 외동으로 자랐고 가족이라는 걸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남편은 아주 대가족 속에서 화목하게 자랐고, 지금도 서로 아주아주 잘 지내요.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죠. 우리는 아이 문제 외에는 거의 싸우지 않아요. 저는 아이를 독립된 사람으로 생각하고 키우려고 하는데 남편은 굉장한 딸바보라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는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매우 주체적입니다. 〈원더랜드〉를 보여줄지 말지도 우리가 아니라 아이에게 선택하게 할 생각이에요.”
*아이를 낳고 기른 경험이 바이리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아이를 낳기 전에 제가 했던 엄마 연기는 진짜가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 제가 연기하는 엄마가 진짜 엄마일 거예요. 현장에서 제 딸로 나왔던 아이도 저를 ‘탕웨이 엄마’라고 불렀어요. 저도 아이를 딸처럼 대했고요.”
*비록 가상 현실에서 AI를 연기하는 거라도 말이죠.
“요즘 드는 생각인데 배우한테 제일 중요한 건 그냥 생활입니다. 솔직한 생활이요. 그 생활을 통해 더 지혜로워지고 마음이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포용하게 됩니다. 생활이 연기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탕웨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연기한다. 적을 사랑하게 된 상하이 스파이(〈색, 계〉)부터 2537번 수인번호를 단 기결수 애나(〈만추〉), 남편을 연이어 살해한 중국인 간병인(〈헤어질 결심〉)을 지나 이제는 죽은 자신을 대신할 AI(〈원더랜드〉)까지 이르렀다. 탕웨이는 이 비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다. 생의 비극이 한바탕 휩쓸고 간 폐허 위에서도 그는 품위를 잃지 않는다. 〈원더랜드〉에서 탕웨이의 AI 바이리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도리 없이 눈을 찡그리며 울게 된다. 어떤 모성은 절절하지 않아도 절절하다. 바이리가 원더랜드의 방화벽을 돌파할 때 그곳에는 모래폭풍이 인다. 그 폭풍 속에서 탕웨이는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닿고자 하는 곳에 가 닿는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탕웨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10년 전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 두 사람은 결혼 소식을 알리며 이렇게 적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그리고 서로가 딛고 선 세계의 너머를 이해하게 됐는가. 〈원더랜드〉는 한 번도 함락되지도 항복하지도 않은 여인과 그 여인과 함께 살아갈 세계를 한없이 치밀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바라본 한 남자가 함께 만든 ‘중요한 증언’이다. (톱클래스발췌)
“우리 직업의 특성상 집을 떠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와 일상을 나누기 위해 영상통화를 자주 하죠. 음성통화보다 영상통화가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요. 그러다 보니 ‘이 영상이 실제가 아니라면?’이라는 질문에 이른 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이 통화는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요.” 탕웨이의 답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원더랜드 서비스’(죽은 사람 혹은 의식이 없는 사람을 AI로 재현해 산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가상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완성한 지금은 이 서비스가 누군가에게는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한 사람을 잃은 고통을 서서히 잊게 해주는 진통제요. 고통이 나아진다면 이후엔 이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겠죠.” 당신이 연기한 바이리는 아이를 두고 떠난 엄마입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빈자리를 AI가 채워주기를 바라죠. “바이리와 저의 상황은 아주 비슷해요. 아마 우리 대화가 영화에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겠죠. 저도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고 외동딸이고, 제 딸도 외동딸이죠. AI 바이리가 아이에게 하는 ‘잘 자고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해’라는 말은 실제로 제가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해요.” 〈원더랜드〉 속 AI들의 공통점은 울지 않고, 화내지 않는다는 거예요.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없죠. 그런 AI를 연기하는 탕웨이에게도 위화감이 없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사실 AI 바이리와 저는 굉장히 닮은 점이 많아요. 저도 잘 울지 않고 잘 화내지 않거든요. AI를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관객에게 그 세계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어려웠죠. 또 하나 비밀이 있어요. 바이리가 죽은 뒤 고고학자 AI로 다시 태어나잖아요? 고고학자는 제 어릴 적 꿈이었어요. 감독님이 이렇게라도 제 꿈을 이루게 해준 것 같아요.”
*고고학자가 꿈이었군요.
“흙을 만지는 걸 좋아했거든요. 잊힌 세계를 복구하는 것에도 흥미가 있었고요. 한때는 도예가가 되는 게 꿈이기도 했어요.” 월극 배우였던 어머니를 보며 자라 배우를 지망한 건 아니었고요. “배우가 꿈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제 삶을 돌아보면 인연을 따라 흘러온 경이로운 반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인연이 저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이끌었고요.”
*감독과의 인연도 그렇습니다.
“감독님은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호기심이 많아요. 여섯 살 아이의 호기심과 60세 어른의 지혜가 공존해요. 뭔가 질문이 생기면 호기심으로 그치지 않고 답을 얻을 때까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대화하고 연구해요. 그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따스함이 있죠. 연구하는 과정은 과학자 같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아주 예술가죠.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 세계도 확장됐습니다.” 김태용 감독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 탕웨이를 존경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집중하기 위한 노력을 보면서 〈만추〉를 찍을 때와 또 다른 성장을 느꼈다고요. “제가 성장했다면 작품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작품을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의 현장이 저를 성장하게 해줬을 거예요. 어느 나라의 작품이냐보다 어느 감독의 작품인가가 제게는 더 중요해요. 저는 운이 좋게도 좋은 감독님과 계속 작업을 해올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색,계〉를 만든 이안 감독님은 마치 병풍 같았어요. 펼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장면이 생겨났죠.”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헤어질 결심〉은 어떤 현장이었나요?
“감독님은 현장에서 늘 온화하게 웃고 있었어요. 어떤 이야기든 다 수용해줬고요. 서래의 대사는 모두 감독님 음성으로 녹음해서 연습했어요. 서래의 감정과 뉘앙스를 가장 잘 알 테니까요.” 〈헤어질 결심〉 당시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를 “한국 영화에 굴러 들어온 복”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오직 탕웨이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송서래의 국적을 중국인으로 설정했다”고 했다. 한국어로 만든 한국 영화에서 한국어를 잘 못하는 타자 입장에 선 서래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한 번도 불리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는 누구의 말보다 밀도가 있다. 극 중 해준(박해일 분)은 서래를 가리켜 “긴장하지 않으면서 꼿꼿한 사람”으로 묘사하는데 그것은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에게도 딱 맞는 설명이다.
*당신은 영화 속에서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연기합니다. 각 언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어릴 적부터 언어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언어를 배우는 건 그 세계의 문화와 생활과 사람을 배우는 일이니까요. 한국어를 더 배우지 못한 걸 아쉽게 생각합니다. 김태용 감독님과 결혼하면서 하루에 한 마디라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우리 대화는 처음부터 영어로 이뤄졌고, (남편은 호주에서 공부해서 영어를 아주 잘합니다) 한번 설정된 부부의 언어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감독이 남편인 경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까요?
“(오랜 시간 고민하며) 현장에서 그는 남편이 아니에요. 오직 감독이죠. 남편으로서는 아주 따뜻한 사람입니다. 저는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펼칠 때 태어나서 외동으로 자랐고 가족이라는 걸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남편은 아주 대가족 속에서 화목하게 자랐고, 지금도 서로 아주아주 잘 지내요.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죠. 우리는 아이 문제 외에는 거의 싸우지 않아요. 저는 아이를 독립된 사람으로 생각하고 키우려고 하는데 남편은 굉장한 딸바보라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는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매우 주체적입니다. 〈원더랜드〉를 보여줄지 말지도 우리가 아니라 아이에게 선택하게 할 생각이에요.”
*아이를 낳고 기른 경험이 바이리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아이를 낳기 전에 제가 했던 엄마 연기는 진짜가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 제가 연기하는 엄마가 진짜 엄마일 거예요. 현장에서 제 딸로 나왔던 아이도 저를 ‘탕웨이 엄마’라고 불렀어요. 저도 아이를 딸처럼 대했고요.”
*비록 가상 현실에서 AI를 연기하는 거라도 말이죠.
“요즘 드는 생각인데 배우한테 제일 중요한 건 그냥 생활입니다. 솔직한 생활이요. 그 생활을 통해 더 지혜로워지고 마음이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포용하게 됩니다. 생활이 연기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탕웨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연기한다. 적을 사랑하게 된 상하이 스파이(〈색, 계〉)부터 2537번 수인번호를 단 기결수 애나(〈만추〉), 남편을 연이어 살해한 중국인 간병인(〈헤어질 결심〉)을 지나 이제는 죽은 자신을 대신할 AI(〈원더랜드〉)까지 이르렀다. 탕웨이는 이 비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다. 생의 비극이 한바탕 휩쓸고 간 폐허 위에서도 그는 품위를 잃지 않는다. 〈원더랜드〉에서 탕웨이의 AI 바이리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도리 없이 눈을 찡그리며 울게 된다. 어떤 모성은 절절하지 않아도 절절하다. 바이리가 원더랜드의 방화벽을 돌파할 때 그곳에는 모래폭풍이 인다. 그 폭풍 속에서 탕웨이는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닿고자 하는 곳에 가 닿는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탕웨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10년 전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 두 사람은 결혼 소식을 알리며 이렇게 적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를, 그리고 서로가 딛고 선 세계의 너머를 이해하게 됐는가. 〈원더랜드〉는 한 번도 함락되지도 항복하지도 않은 여인과 그 여인과 함께 살아갈 세계를 한없이 치밀하게 그러나 다정하게 바라본 한 남자가 함께 만든 ‘중요한 증언’이다. (톱클래스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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